우리 애들을 처음 만난 기억은 살려둬야 할 거 같아, 다른 곳에 올렸던 글을 찾아 옮김
모든 출산은 특별하다. 하지만 우리의 출산은 일상처럼 자연스러웠다.
2주 전, 미미를 만나기는 아직 이른 36주.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내는 1주일 정도 집에서 쉬면서 일을 했다.
그리고, 37주 몸 상태가 좋아져서 다시 출근을 하였고 빠를 것 같았던 미미를 만날 날도 뒤로 미뤄진듯 평온한 날들이였다.
그리고 찬이와 한이를 만났던 38주가 되고, 이제는 미미를 만나도 되기에 다시 운동을 열심히 했다.
아내는 틈틈이 계단오르기를 하면서 하루에 만보를 꾹꾹 채웠다. 그 기간동안 한이는 킥보드를 배워서 제법 잘타게 되었다.
11월 11일 천원에 행복을 산다는 빼빼로데이가 막 지난 12일 1시 50분 아내가 날 깨웠다.
5분 간격으로 진통이 50초 정도 된다며 진진통이 시작되었다 했다.
아내는 앱으로 진통 주기를 기록했고, 나는 아내의 요구사항(꼬리뼈 눌러주기, 등 마사지 등)들을 수행했다.
진통 주기를 보니 3~4시간 정도 여유가 있을 거 같아, 오늘 처리해야 될 일 때문에 회사에 노트북을 가지러 다녀왔다.
진통의 세기는 좀 더 강해져서 출산 준비를 했다.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 방 공기를 데우고, 취사 예약을 하고
수면용 매트를 치우고 예전에 쓰던 마약매트를 깔았다. 미리 싸두었던 출산용 캐리어를 풀어 출산장소 옆에 기저귀, 속싸게 등을 두었다.
촬영용 카메라를 설치하고… 등
나는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진통 주기에 맞춰 마사지를 계속 해주었다.
마사지 주기는 짧아졌고, 마사지의 시간은 길어졌다. 그렇게 출산이 점점 다가왔다.
3시를 넘어 나는 아내에게 원장님에게 연락을 하자고 하였는데, 아내는 원장님이 일찍오면 기다리셔야 된다고 이슬이 나오면 연락을 한다고 한다.
내가 조금 졸았던 4시 50분 아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며 이슬이 비쳤다고 원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빨리 연락하지…” 라는 원장님의 푸념섞인 말씀이 수화기로 들렸다.
이슬이 나오고, 진통이 세졌다. 5시 10분쯤 아내는 많이 힘들어했고, 나는 힘을 빼고 호흡을 하자고 했다.
아내의 얼굴에 두번의 출산에서 봤었던 출산이 임박했을 때의 표정이 나왔다. 아내에게 얘기하고 밑을 보니 자궁문이 꽤 열려있었다.
’30~40분 안에 나올 거 같은데, 원장님 오시기 전에 나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는 내지 않고 아내에게 진행 상태를 얘기하면서 힘 주지 말고 이완을 하라고 했다.
5시 20분 진통이 커졌고, 아내에게 우리끼리 미미를 만날 수도 있겠다고 얘기를 했다.
카메라를 키거나 뭔가를 하려고 자리를 비우려 하니 아내가 가지 말라고 한다. 자기도 진행 상황을 느낀 것 같다.
5시 25분 즈음, 출산이 임박하다고 느꼈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애들 수건으로 쓰고 있는 천 기저귀 세개를 꺼내어 아내 밑에 받쳤다. 그리고 그 뒤에 기저귀형 입는 오버나이트를 뜯어 깔았다.
우리끼리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게 들었다.
아내는 진통 속에서도 호흡을 고르며 밀어내기를 준비했다. 5시 30분 자궁문으로 머리가 보인다.
아내가 밑에 뭐가 나오는 거 같다고 하여 확인하니 피가 나왔다. 조금 걱정은 됐지만, 태연하게 피가 나왔다고 했다. 우리를 믿어야 한다.
5시37분 아내가 힘을 주니 머리 윗부분이 조금 나오며 자궁문에 걸린다. 아내에게 이제 다 나왔다고 다음에 밀어내기를 하면 나올꺼라고 얘기했다.
5시 38분 미미의 얼굴이 나왔고, 손으로 얼굴을 받치자 미끄러지듯 몸이 술크덩 빠져나와 두손으로 온몸을 받쳐 들었다.
미미는 바로 울음을 뱉었다. 됐다. 나는 안심하며 미미를 아내의 배위에 올려주었다.
미미의 울음 소리에 깬 찬이가 우리의 곁으로 와 미미의 탄생을 함께 하였다. 아내의 얼굴은 이내 평온해졌다.
“고생했어.” 우리는 서로를 다독였다.
원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애기가 나왔다고 천천히 오셔도 된다고 말씀을 드리니
“그럴거 같더라, 3키로 정도 남았으니 금방 갈꺼에요” 하신다.
10분 뒤에 원장님은 집 근처에 도착하셨고, 나는 원장님을 모시로 갔다.
원장님은 예전과 똑같은 큰 가방을 들고 오셨다. 뭔가 믿음직스러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가방이다.
가방에서 패드 등을 꺼내어 아내의 밑에 받치고 후처치를 하셨다. 여유가 생긴 나는 태반을 담을 대야를 준비했다.
원장님은 태반을 받으시며, 찢어진 곳 없이 출산을 잘 했다고 하셨다.
찢어진 곳이 없다는 얘기에 아내는 다행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원장님은 빨리 연락하라고 미리 얘기했는데, 빨리 연락안했다고 가벼운 핀잔을 주셨다.
이슬을 보고 연락을 드렸는데,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고 원장님이 나중에라도 오실꺼니 우리끼리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다.
원장님은
“그래 이게 자연스러운긴데, 엄마들이 아픈 것땜에 출산을 무서워하고 애를 안 낳으려고 한다. 제왕절개를 할라 하고, 무통주사 맞고 그런다.”
며 안타까워 하셨다.
원장님은 한시간 정도 있으시면서
아내와 미미의 상태를 살피고, 출생증명서를 작성해주셨다.
얼려놓은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준비하면서 식사를 하고 가시라고 하니
본인은 한것도 없고 배도 안고프다며, 어제 출산한 함양의 부부한테 가실꺼라고 괜찮다고 하셨다.
원장님을 배웅해드리니 한이도 깨서 미미의 탄생을 기뻐했다.
모든 출산이 그렇듯, 처음인 듯 특별한 만남이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믿음이 충만했다. 그러기에 담담했다.
우리의 힘으로, 그리고 내 손으로 미미를 건강하게 받을 수 있어서 거룩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마지막이 될
뜻깊은 순간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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