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계획
등산장소 : 지리산 화대종주
참여인원 : 정성훈, 서재홍
차량지원 : 삼순 (화엄사까지)
등산계획 : 1박 2일 (1박 세석 대피소)
개인장비 : 등산장비, 헤드랜턴, 행동식
공동장비 : 버너, 코펠
화대 종주는 성훈이의 어처구니 없는 얘기로 시작한다.
8월에 성훈이는 지리산 당일 종주를 가려고 하는데 12시간이면 되냐고 물어왔다.
성중종주라고 생각하고
"12시간이면 쌉 가능" 이라고 하고
인증, 메달 이런거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무슨 인증있냐고 하니깐 지리산 종주 인증이 있다고 한다.
찾아보니깐... 화대네...
트레일러닝 순위권은 8시간 안쪽에 산신령들이야 12시간이면 충분하다지만
산행도 진클에서 시작한 성훈이의 등력을 생각할 때는 18~20시간은 잡아야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성훈이의 빅피쳐인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보지도 않고 얼토당토안하게 뭔가를 하려는 모습에
폭풍 잔소리를 하다가 1박2일로 화대종주를 같이 하게되고, 그 판이 커져서 이름도 거룩한 등반프로젝트까지 이어졌다.
하는 김에 나도 구례군에 지리산 종주 수첩을 신청해서 받았다. 만원의 행복
10월 1일 ~ 10월 3일 중 종주를 하기로 하고
대피소 예약 당일 성훈이가 10월 1일(토)로 너무도 쉽게 세석 대피소를 예약하였다. 능력자~
진주에서 지리산 종주를 하려면 차편이 좋지 않다.
나는 보통 아침 첫차로 하동 - 하동에서 아침먹음 - 구례 - 화엄사나 성삼재로 버스 이동을 하는데
여러번 갈아타야 하고 중간에 비는 시간도 있어서 산행계획을 잡는데 순탄치 아니하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훈이랑 얘기 후에 대원사에 복귀는 버스로 하기로 하고
화엄사까지 태워줄 사람을 찾기로 했다.
며칠 뒤 삼순이 누나가 태워주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리고 며칠 뒤 저녁 10시쯤 성훈이에게 전화가 왔다.
"갔다 온 사람이 얘기하는데, 화엄사까지 태워달라는 거 보다 대원사에서 진주까지 태워달라는게 좋다는데~"
순간 울컥하여 성훈이에게 뭐라하고
화엄사까지의 대중교통 이동루트, 화엄사 버스 주차장에서 화엄사 산행 시작점까지의 거리, 지도
대원사에서의 대중교통, 대원사에서 대원사 버스정류장까지의 거리, 지도
를 정리해서 보냈다.
그리고 뒷날 만나서 폭풍 잔소리
"팀으로 움직일 때는 결정하기 전까지는 여러 얘기를 듣데, 결정하고 나서는 큰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작은 차이로 계획을 변경하는게 아니다. 혼란만 만든다." 며 한참을 쏘아붙였다.
산행준비
나는 산에 가면 적게 먹고, 짐도 적게 가지고 가는 유형인데 이번에는 일행이 있으니 좀더 챙겨본다.
이틀 점심으로 빵과 우유
첫날 저녁으로 라면 과 햇반, 그리고 성훈이를 위한 족발
둘째날 아침으로 누룽지와 닭가슴살
그리고 에너지젤, 행동식
2018년 화대 종주 때 단벌로 간 탓에 축축했던 기억을 더듬어, 갈아입을 옷도 몇벌 챙겼다.
화요일에 짐을 싸두고, 산행 전날인 금요일에 성훈이를 만나 준비사항을 공유했다.
첫째날
화엄사로 이동
5시 30분에 성훈이 차를 타고 삼순이 누나가 사는 원지로 간다.
"아~ 출발할 때 전화달라고 했었는데~"
성훈이가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순이 누나는 잠에서 반쯤 깬 목소리가 무색하게, 금방 아파트 입구로 내려왔다.
아침을 하라며 약밥과 떡을 챙겨준다.
여러모로 고마운 마음이다.
1시간 반정도를 달려 화엄사에 닿아, 누나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건내고 출발을 하려다
인증맨 성훈이는 화엄사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야 된다며 다시 발길을 돌린다.
'찰칵'
"하나 둘 셋도 없어요?"
"그런거 없다~"
종주 수첩에 화엄사 도장을 꾸욱 찍고, 대망의 화대종주 첫발을 내딛는다.
인증스탬프는 화엄사 정문 오른쪽 끝 차량 출입구 쪽에 있음
산행시작 (화엄사 - 노고단삼거리)
블랙야크 화대종주 인증 기간으로 요즘 입산시간 단속을 철저히 한다는 화엄사 들머리를 지난다.
"가자가자~"
등산로를 얼마 오르지 않아 공사로 막혀있어, 도로를 따라 연기암 방향으로 오른다.
화엄사에서 무냉기까지 6km 정도의 거리에 1000미터 정도 고도를 높여야 한다.
중간에 집선대에서 한번 쉬고, 코재까지 쭈욱 오른다.
코가 땅에 닿는다고 코재
"코재 코재 하드만, 별거 없네요~"
요즘 100대명산 등 인증 산행을 많이해선지 성훈이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있다.
노고단대피소를 포함하여 전라도쪽 대피소들은 지금 공사중이다.
빠트리지 않게 인증 도장 부터 찍고 잠깐 숨을 돌린다.
10월을 맞아 지리산을 찾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인 대피소를 떠나 길을 잇는다.
노고단 삼거리
노고단까지 데크로 이어지는 길, 예약제에 대한 푸념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시설은 좋게, 사람들은 못오게" 로 요약되는 우리나라 국립공원공단의 운영방향에는 나도 반대다.
자연은 자연으로, 모험가에게는 모험을!
날이 좋아
저멀리 무등산까지 남도의 산들이 뽐내는 산그리메가 아름답다.
지리산 주능의 시작점 노고단고개
인증사진 새치기 하는 사람들 틈으로 성훈이의 인증사진을 찍는다.
노고단 삼거리 - 연하천
돼지령을 지나니 성격급한 나무들이 붉음을 뽐내고 있다.
"저거는 삼순나무, 저거는 현철나무, 저거는 영태나무, 저거는 경숙나무"
우리 클럽에서 한급함 하시는 형님, 누나들 이름을 얘기하며 웃음으로 가을을 시작을 즐긴다.
인증을 해야한다며 반야봉 가자는 성훈이를 세석까지 오늘 갈길이 멀다며 돌려 세운다.
물맛 좋기로 유명한 임걸령, 물통가득 시원함을 가득채운다.
성훈이는 또 인증사진~
블랙야크 인증, 뭐 인증, 저 인증
여러개 인증을 동시에 하는 것 같은데, 성훈이에게서 보기 힘든 부지런함이다.
중간에 쉬며 빵과 우유로 점심을 먹는다.
냠냠냠
노루목을 지나 삼도봉에 닿으면
오늘 산행 처음으로 천왕봉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지리산을 처음 종주하는 사람이 제일 신기해 하는 곳인 삼도봉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인증 사진 찰칵.
역종주시 사람 진빼기로 유명한 화개재 긴 계단길
쏟아지는 땀, 거침 숨소리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내며
토끼봉과 명선봉을 지난다.
오후 3시, 연하천은 공사중
20대 11월 어느날, 처음 지리산 종주를 하며 하루밤을 지냈던 곳
많이 흐른 시간만큼 운영주체도 국공으로 바뀌고, 건물도 많아졌다.
하지만 대피소 바로 앞에 있는 식수터는 언제나 처럼 '콸콸콸' 그대로다.
나는 인증 도장을, 성훈이는 거기에 더해 인증 사진을~
벽소령까지 2시간, 세석까지 2시간
7시 반쯤을 예상하고 길을 재촉한다.
연하천 - 벽소령 - 세석
형제봉을 지나며
"진주에 이런 바위 있으면 벌써 개척했겠지? 코스 20개는 내겠다~"
돌아오는 성훈이의 말
"있는 거나 잘해라 몰라요?"
주능 중간 지점인 벽소령
많은 사람들이 지친 몸을 달래며 저녁을 준비중이다.
각자의 인증을 마치고 다섯시를 살짝 넘어 길을 잇는다.
"아~ 벽소령 예약했으면 좋았을낀데~" 성훈이의 짧은 푸념
벽소령을 지나 오늘 누적거리가 20km 중반대를 넘어서며
주변은 어두워지고, 먹을꺼고 떨어진다. 덩달아 내 체력도 쭉쭉.
그래도 한달 달리기 했다고 다리는 말짱한데, 기초체력은 호달달
갈 때 가더라도, 풍경 좋은 곳에서 사진은 남긴다.
헤드랜턴으로 주변을 밝혀보지만~ 체력은 이미 바닥 상태.
이때 부터 성훈이가 앞장서더니, 한번씩 내 상태를 살피는지 성훈이의 헤드랜턴 불빛이 나를 비춘다.
둘다 아무말 없이 어둠에 불빛으로 선을 긋는다.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 도시에는 사람이 만든 불빛이 초롱초롱하다.
나는 이렇게 자연물을 이용한 표지석을 좋아한다.
여기까지 오면 세석이 꽤 가까워진 것이다.
세석을 1km 남긴 7시 20분쯤
대피소에서 연락이 온다.
"1km 남았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 세석에 닿는다.
"와 도때기 시장이네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요즘 국공의 관리가 느슨해졌는지 다들 술에 취해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리를 배정받고, 신발을 갈아 신는다.
내 오래된 등산화는 떨어진 내 체력만큼이나 상태가 메롱이다.
오른쪽 밑창만 덜렁덜렁 하는 줄 알았더니 옆쪽에 부착물도 다 날라가서 내피가 다 보인다.
지친 몸이지만 물을 뜨러 내려가는 길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오늘 저녁은 성훈이 표현으로 "꿀꿀이죽"
라면 + 햇반이다. 족발에 성훈이가 가져온 햄을 곁들이니 그래도 기운이 난다.
성훈이가 가져온 콜라는 내가 뺏어먹고, 성훈이는 투명한 물을 마신다.
지친 몸에 투명한 물이 들어가선지 성훈이의 목소리도 커진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성훈이의 큰 가르침
"인생 즐기고 사세요~"
자리를 파하고 배정받은 자리에 지친 몸을 누인다.
대피소가 처음인지 중간에 들어와 불을 켜는 사람도 있고 어수선하다.
시간이 좀 지나니 바닥이 뜨거워진다. 바닥 온돌 공사를 했나보다...
안 그래도 대피소 오면 갑갑해서 잘 못자는데, 발밑에 있던 창문을 연다.
찬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성훈이도 시원한 바람을 찾아 땅따먹기 하듯 내 영역으로 넘어온다.
오늘 밤은 짧고도 길다.
둘째날
세석 - 천왕봉
3시, 알람과 함께 일어난다.
짐을 챙기고, 먼저 취사장으로 나선다.
"성훈아, 밥 해놓을테니깐 챙겨서 나와"
식수장으로 내려가 어둠속에 들어서니 하늘에 별이 쏟아진다.
"졸졸졸" 조금씩 나오는 물이 밉지가 않다.
그 시간만큼 별을 본다.
아침은 잘 안 먹는다는 성훈이는
"어제는 꿀꿀이죽이더니, 오늘은 닭찌찌 죽이네요~"
잘 안 넘아가는지 먹는 둥 마는 둥이다.
천왕봉 일출을 꿈꾸는 사람들은 먼저 떠났고, 우리는 거의 막바지로 3시 40분 경에 세석을 출발했다.
오늘 일출 예상시각은 6시 20분, 6시20분 쯤 천왕봉 도착을 예상한다.
촛대봉을 오르며
"촛대봉은 촛대봉이라는 정상석도 없고 안내판도 없다~" 는 성훈이의 얘기에
"정상석은 없지만, 이정표는 있다" 라며 기억력 대결에 들어간다.
지난 겨울에 촛대봉에 왔었다는 성훈이의 말과는 달리, 촛대봉에서 장터목 방향으로 살짝 빠진 방향에 촛대봉 이정표가 있었다.
"봐~ 있잖아~"
선비샘은 물이 졸졸졸 수준이다.
먼저 간 사람이 받아 놓은 물로 목을 나눠 축인다.
내가 좋아하는 연하선경도 밤에 양보하고, 천왕봉 일출을 향해 달린다.
간단한 인증을 마치고, 장터목을 바로 빠져나온다.
제석봉을 오르니 하늘이 밝아진다.
"성훈아 좀 더 속도를 높여~"
먼저 가던 사람들을 지나쳐 쉬지 않고 천왕봉에 다다르니
6시 10분 정도다.
일요일 아침 답게 천왕봉은 인산인해
일출을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 있다 성훈이가 도착한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
성훈이가 자기 덕이라며 한라산에서도 한번만에 백록담을 보았다며 영웅담을 얘기한다.
"그래~ 니 덕분이다!"
"성훈아 저기가 와룡산이야~"
구름 바다 속에 배처럼 저멀리 와룡산이 우릴 보고 인사한다.
천왕봉에서 인파 틈에서 간단히 인증사진을 찍고
화대종주 대장정 마무리 대원산 하산길로 들어선다.
"대장이 일출 때문에 대원을 버리고 가서야~" 라는 성훈이의 핀잔에
"니가 대장이지~ 일개 대원은 일출 때문에 대장을 버리도 된다~" 로 화답한다.
천왕봉 - 대원사
천상의 화원이라는 중봉 가는길
가을로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 꽃들이 남아 있다.
노고단과 반야봉을 뒤돌아 보고
저 멀리 장수덕유부터 향적봉까지 덕유산 능선을 바라본다.
숨이 거칠어질 때 쯤 중봉에 닿는다.
매번 곰탕 속에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니
덕을 잘 쌓은 성훈이 덕분인지 가을 옷을 입은 천왕봉을 모습을 보여준다.
굽이굽이 산이 그려내는 수묵화
중봉 아래에 안전쉼터가 생겼다.
다시 천왕봉을 올려다보고
천왕봉과 중봉을 담는다.
써리봉을 지나~
닿을 듯 안 닿는 치밭목 대피소에 도착해 등산화를 벗는다.
"다 떨어진 등산화가 뭔 자랑이라고 거기에 올려요~"
라는 성훈이의 얘기를 웃음으로 무시하고
등산화 영정사진을 촬영
"시간은 많다~ 천천히 가자"
오래만에 둘이 마음이 맞는다.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느긋한 속도로 내려간다.
날이 좋아선지, 시간이 널널해선지, 성훈이와 함께 해선지
대원사 하산길도 그렇게 지겹지많은 않다.
유평 마을에서 샌달로 신발을 갈아신고,
대원사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서 대원사에 닿는다.
스탬프를 찾아 두리번 거리다, 인터넷으로 확인하니 아래 버스정류장 쪽에 있다.
성훈이는 마지막 인증사진을 찍고~
대원사 스탬프는 소막골 야영장 입구의 사무실에 있다.
예전에 버스표를 팔던 매점에서 버스시간을 확인하니, 어제(10월 1일) 부로 진주나 원지로 바로 가는 버스가 대폭 줄었다고 한다. 2시 40분 덕산 가는 버스를 타기로 하고, 음료수로 갈증을 달랜다.
오랜 시간 함께한 등산화는 쓰레기통으로 안녕~
다른 분들이 내려와서 버스 시간을 묻길래 귀를 기울인다.
"3만 오천에 원지까지" 라는 얘기를 얼핏듣고 물어보니 매점 사장님이 원지까지 태워주신다고 했나 보다.
"사장님 저희도요~" 1인당 만원에 원지까지 달린다.
원지에서 성훈이 차를 타고 진주로 간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혼자산행하면 마지막에 꼭 들르던 황소분식에서
내 소울푸드 순대국밥을 먹었다.
정리
사람마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성훈이는 자기의 속도로 산을 타고, 바위도 하나 보다.
쌓여가는 각종 인증 메달과 스탬프 만큼이나 등력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옆에서 볼 때 답답한 구석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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