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계획
등반장소 : 대둔산 동지길
참여인원 : 정성훈, 서재홍
출발시간 : 06:00
출발장소 : 망경동 주차장
차량지원 : 서재홍
개인장비 : 등반장비, 행동식
공동장비 : 자일 1동 (서재홍)
프렌드 1Set (서재홍)
모든 이야기에 멋진 결말을 꿈꾸지만, 우리가 살면서 하는 많은 행위들이 시작의 거창함에 비해 그 끝은 지리멸멸할 때가 많다. 익숙함에서 오는 나태함에 반기를 들고 성훈이와 나의 이야기에 멋진 결말을 쓰고 싶었다.
2015년 내가 진클에 몸을 담고 얼마지나지 않은 6월 두번째로 찾은 대둔산, 기억도 선명한 동지길
당시 내게는 너무도 힘들었던 1피치, 여러번에 걸쳐 시도를 하다 그로기 상태로 포기를 외쳤던 나에게
영태행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회는 음따~"
5월 동심길에서도 탈탈 털렸기에
"행님 저한테는 대둔산이 안 맞나 봐요. 대둔산은 안와야겠어요" 라며 푸념처럼 뱉은 농담에 영태행님의 실망가득한 표정도 기억에 선명하다.
행님들의 응원과 몇번의 우여곡절을 더해 결국 올라선 마천대 정상, 땀을 날려주는 바람
정상에서 동지를 외치며 찍었던 단체사진
'이런것이 동지구나'
기억에 남는 등반지였다.
말만 거창한 등반프로젝트였지 짧은 기간으로 등반을 할 수 있는 날도 많지가 않아, 마지막 등반은 이틀간 등반을 하여 하루는 대둔산에서 동지가 되어 보고 하루는 천등산에서 꿈을 꾸어보기로 했다.
'꿈을 꾸고 동지가 될 것인가?', '동지가 되고 꿈을 꿀 것인가?'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를 고민하다 일요일 빠른 복귀를 위해 동지가 되어, 같이 등반가로서의 꿈을 꾸기로 최종 결정을 하였다.
출발과 어프로치
성훈이와 동네에서 6시에 만나 대둔산으로 출발하는데, 겨울이 가까워오는지 6시임에도 날이 깜깜하다.
요즘 바삐사느라 잠이 부족해선지 졸음이 몰려오지만 성훈이의 쉴새없는 떠듬에 대둔산에 가까워갈수록 잠도 달아난다.
대둔산은 가을 단풍이 절정이다. 좋은 시절이다 보니 산을 찾은 사람들도 바글바글 하다.
길 못찾기로 유명한 진클답게 2015년에 헤매고 헤맨 후에 겨우 찾았던 동지길 시작점.
어프로치 중에 내가 밟아 떨어진 돌이 영태행님 머리 옆을 스칠 듯 지났던 아찔한 기억이 있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동지길은 동심정에서 20~30미터 정도 오른 뒤 나오는 커다란 바위 왼쪽으로 뚜렷하게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초입쪽에 이렇게 동지길이라고 표시기가 있으니 큰 도움이 된다.
옛 기억을 더듬어 헤매지 않고 한번에 기억도 선명한 1피치 바위에 도달하였다.
앞에는 등반 중인 한팀과 대기 중인 한팀이 있었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노란 표시기 덕분에 안 헤매고 찾았다고 얘기하니 앞 팀의 한분이 다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고마운 분들이 있기에 바위위의 좋은 길들을 유람하듯 다닐 수 있다.
성훈이에게 뒤에 동심바위와 동심길에 대해서 짧다막하게 얘기해주는데, 성훈이는 듣는 둥 마는 둥이다.
그렇게 1시간여를 기다린 10시쯤
동지가 되기 위한 두사람의 12피치 여정이 시작된다.
1피치는 어떤 개념도에는 5.9 라고 되어 있는데 믿지마라.
앞에 로컬팀이 대둔산천등산 1피치 5.9는 믿을게 못된다며 동지길, 처음처럼, 그리고 한 길을 더 얘기하셨는데 기억이 안난다. 까다로운 밸런스에 엔간한 10b 보다 어렵다.
두번째에서 세번째 볼트 넘어가는 곳이 어려운데, 성훈이는 몇번 이래 저래 해보더니 자알 넘어갔다.
앞팀 선등자가 위쪽 어렵지 않은 곳에서 추락을 하였기에, 성훈이에게 집중하라고 얘기를 해주었다.
이제 내차례
매달려 보니 예전 기억이 난다. 벽에 매달리는 운동을 안 하기에 부족한 밸런스를 완력으로 채워야 하는 곳에서는 오래 매달려 있으면 금방 밑천이 드러난다. 느낌이 올려는 찰라 후다닥 넘어가 본다.
그래도 요령은 늘었구나...
3피치, 4피치는 고냥저냥이다.
성훈이는 잘 가면서도 "볼트 하나는 박아놓지" 라며 투덜투덜 한다.
군데 군데 나무를 이용하여 퀵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도 그냥 올라갔길래
"성훈아 어려워서 퀵을 하는게 아니라, 안전을 위해서 퀵을 하는거야. 중간 중간 자연물 이용해서 퀵을 할 수 있으면 하고 넘어가라" 잔소리를 한다.
5피치는 안할거라고 앞팀의 얘기를 들어선지, 5피치를 앞두고 성훈이는
"어떻게 할까요?" 물어온다.
"5피치 기억은 잘 안나는데, 저 옆쪽에서 한것 같다. 하든지~ 안하든지~ 니가 알아서 결정해~"
"처음보는 바위니깐 그래도 해볼께요" 성훈이는 그렇게 답하며 내가 얘기해준 곳이 아닌 그 옆을 라인을 보며 여기인거 같다며 출발을 하였다.
그 결과 후퇴 ㅋㅋ
말 안들으면 사서 고생
대망의 7피치 위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벌어지는 크랙이다.
보기에는 갈만하겠는데 생각하지만 막상 붙으면 어렵다.
앞팀도 초보라는 성훈이의 너스레에 "에이~ 그래놓고는 7피치 자유등반하는거 아냐~" 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
성훈이도 첫볼트를 넘어 자유등반을 시도해보지만 큰 벽을 느끼는 것 같았다.
"성훈아 해보고 안되면 위쪽에 캠 박고 인공 등반해~"
"와아 이해가 안가네. 와아... 이걸 간다고?" 어려운 구간을 만날 때 마다 하는 성훈이의 레파토리
팀을 이끌다보면 자기의 난이도보다 더 높은 지점을 만날 수 있는데, 인공이든 뭐든 동원가능할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도 대장에게 필요한 자세다.
성훈이는 캠과 레다를 적절하게 사용해, 이 난간을 헤쳐나간다.
"와아 내가 해본거 중에 제일 어려운 거 같다."
처음에 올린 개념도에는 10d 라고 나오지만 확실한 11급이다.
간단한 계단 슬랩을 넘을 때 쯤에 마천대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훈이는 쉬운 길을 어렵게 가는 능력이 있다.
상사길 1피치 정도의 쉬운 슬랩성 길임에도 길을 잘 못 들어 "와아... 어려운데 앞에 팀이 그래서 저 옆으로 갔네" 라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쉽지만, 위의 개념도대로 5.5~5.6은 아니다.
"성훈아 니가 길을 잘 못 갔네. 아 여기 기억난다."
덮장 바위를 지나니 예전에 등반한 기억이 난다.
마천대 바로 아래로 15m 하강을 한다.
"길이 없는데요? 볼트도 안 보이고?"
"저기 맞어. 볼트가 없으면 뭐다?" 성훈이가 자꾸 다른 길을 찾길래 직상을 제촉한다.
"그럼 가볼께요."
"성훈아 그길 맞는데 찜찜하면, 캠 박을 만한데 있으면 박고 가~"
"아 여기 볼트 있다." 한참을 오른 성훈이가 유레카를 외친다.
"볼트가 하나 뿐이네~" 성훈이는 10미터 쯤을 더올라 정상 바로 아래에 선다.
가을이 절정인 대둔산이 아래로 펼쳐진다.
"성훈아 올라가서 난간에 확보하면 된다" 라는 얘기에, 성훈이는 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지
"와... 여기는 완전 관종이 좋아할만 곳이네요. 쪽팔리겠는데 와..."
"그럼 니가 좋아하겠네. 인스타 태그 많이다는 사람들이 관종이라던데~"
내가 느릿느릿 등반을 하니
"빨리 올라오세요" 성훈이가 제촉을 한다. 크크
내가 사진을 찍으니 못마땅해하며 ㅋ
하산
정상에 올라서도 부끄러워하며 한쪽 구석탱이에서 장비를 정리하자고 한다.
"뭐가 부끄럽네~"
"부끄러운게 아니라, 민폐일까봐 그러죠~" 성훈이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둘러댄다.
장비를 내려가며 내려가는 길에
"아~ 같이 사진을 안 찍었네 다시 올라가자"
"사진 안 찍어요" 성훈이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다시 마천대로 올라 동지가 된 기념사진을 찍는다.
"성훈아 여기 막걸리 엄청 맛있어~"
내가 맛있기로 손꼽는 대둔산 중턱의 막걸리집. 2015년 초여름 지친 몸을 위로하며 적셨던 막걸리 한잔을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다.
기억보정인지 예전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시원하다~
케이블카를 타로 가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바위를 구경하며 가을을 만끽한다.
처음에는 야영을 하려고 하였는데, 예전에 이용했던 대둔산야영장이 없어졌고
괴목동천에 확실한 야영지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날도 추운데 그냥 따뜻하게 자요~" 라는 성훈이의 얘기에 서둘러 잡은 4만원 짜리 모텔
숙소에 들어가서 예약했다며 얘기를 하니 이름도 묻지도 않고 키를 주신다.
"이름 확인 안하세요?"
"야놀자 아니에요?"
"저 익스페디안가 뭔가에서 예약했는데요???"
"키 가져가도 되죠?"
휴대폰을 뒤적거리는 사장님을 뒤로 하고 밥을 먹으로 나온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국밥을 먹으려했는데
"저희는 저녁 장사는 고기 위주로 해요~ 저희가 돼지고기 맛집으로 티비에도 나왔어요" 라는 사장님의 얘기에 고기를 시킨다. 오우 럭셔리
술은 편의점에서 사먹기로 하고 밥을 먹었는데... 아이고 배불러~
편의점에서 술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티비를 보는데...
이태원에서 큰 사고가 났다며, 믿기지 않은 뉴스가 나온다.
참담하다.
울적한 마음을 술 한잔으로 달래고 내일을 기약하며 일찍 잠자리에 든다.
정리
'암벽은 하고재비들이 많다.' 라는 얘기처럼 암벽에 입문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화려하다.
예전에 잘 나가던 기라성같던 클럽들도 내적인 갈등으로 많이 깨졌다는 풍물이 들리는 거 보면, 바람잘 날이 없는 것이 암벽클럽의 숙명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 클럽 회원들도 그 크기와 표현 방법은 다를 수 있겠지만, 모두 클럽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고 본다. 내가 개인 사정으로 등반활동과 멀어지면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우리클럽을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고 그러기를 바라는 찐득함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해온 것도 사실이다.
위험을 동반하는 '등반행위'의 특성상 항상 '하하호호' 할 수도 할 필요도 없겠지만
치열함을 동반하면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가는 동지로써 서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을 한복판 '동지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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