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계획
등반장소 : 천등산 어느 등반가의 꿈
참여인원 : 정성훈, 서재홍
출발시간 : 07:30
출발장소 : 낙원파크
차량지원 : 서재홍
개인장비 : 등반장비, 행동식
공동장비 : 자일 1동 (서재홍)
이름 만으로도 사람을 부르는 길이 있다.
설악산 울산바위를 뒤로하고 노적봉를 피너클을 오르며 절로 시를 읊게된다는 '한편의 시를 위한 길' 처럼, 천등산의 '어느 등반가의 꿈'도 등반선 만큼이나 멋진 이름에서 오는 매력이 있다.
나는 천등산은 두번 가봤는데 한번은 2015년 동지길 등반 후 뒷날 찾은 '바램은'
그리고 2017년 초보인 성훈이에 맞춰 선택한 '처음처럼'
처음처럼을 오르며 보이는 건너편으로 보이는 '어느 등반가의 꿈'의 등반선이 참 멋져보였다. 다음에 가야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언 5년이나 되었네.
그래 잊고 있던 꿈을 찾으로 가보자
어프로치
전기장판을 최고로 올리고 잤더니 어젯밤의 안좋은 소식이 겹쳐 밤새 꿈속 여러 얘기에 일어나도 개운치가 않다.
꿈길을 가려고 꿈을 꾼건지, 오랜만에 꿈을 꾼 거 같다.
낙원파크. 시설은 오래되었지만, 대둔산에서 멀지 않고 저렴하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을 계획이였으나, 성훈이가 든든한 아침을 원하는 눈치라 대둔산 앞에서 얼갈이 해장국을 먹었다.
꿈길도 식후경
대둔산 아래를 돌아 천등산에 도착하니, 반가운 바위가 우리를 반기는데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하다.
지가 늦게 일어나놓고는
"일찍 출발했어야지~" 하는 성훈이의 말을 건너뛰고
어김없이 맨땅에 불질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괴목동천을 건넌다.
전에 없던 안내판이 생겼다.
천등산의 상징과도 같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안내도 이다.
화려한 안내판보다는 이런 것들이 멋이 있다.
천등산은 크게 세개의 척추(모서리?)가 있는데
제일 왼쪽이 어느 등반가의 꿈, 가운데가 처음처럼, 오른쪽이 민들레릿지이다.
여러 명이 온다면 팀을 나누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등반을 할 수 있다.
처음처럼은 좀 헤매다 찾았는데, 어느 등반가의 꿈은 찾기가 쉽다.
이정표에서 바로 위로 오르면 물길 아래에 개념도가 붙어 있다. 위쪽으로 철계단이 보이는데 그쪽으로 올라가면 1피치 시작점이다.
오늘도 앞에 한팀이 등반 중이고, 다른 팀이 대기중이다.
"어떻게 할까요?"
"나는 꿈길을 하고 싶은데, 니가 하자는 대로 할께"
"온김에 기다렸다 해요"
기다리기로 하고, 궁뎅이 깔고 앉아 앞팀이 나누는 얘기에 귓동냥을 한다.
"볼트가 왜 여기 있는지 알아?" 생뚱맞은 위치에 있는 첫 볼트를 가르키며
원래 어느 등반가의 꿈은 개념도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데 이 철계단이 생기면서 1피치의 중간 지점에서 시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쌍볼트까지의 거리가 굉장히 짧다.
우리 뒤에도 여러 팀이 와서 세월이가면, 벽이벽 등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두시간 여를 기다려 대망의 1피치 등반을 시작한다.
"잘 봤죠? 나무 안 쓰고 갔어요!"
1피치는 두번째 볼트에서 약간 오버행의 턱을 넘어가야 하는데, 밸런스가 깨지기만 뒤쪽의 나무를 이용하면 쉽게 넘어갈 수 있다.
1피치 거리가 짧기 때문에 무난한 2피치까지 이어서 등반을 한다.
2피치 중간을 넘으면 선등자가 보이지 않는데, 10여분 동안 위쪽에서 반응이 없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고, 위쪽에 귀를 집중한채 긴장을 놓지 않았다.
한참을 지나 자일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곧 이어 등반 완료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내차례
"출발 준비완료~" 소리를 외쳐 보지만 위쪽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다.
한두차례 더 외쳐보고 자일이 올라가는 거를 보고 출발을 한다.
턱 아래에 서니 밸런스가 자연스레 깨진다. 오른쪽 모서리를 잡고 넘어서려는데 자일이 안 올라간다.
"줄당겨~" 를 외쳐보지만 별다른 소식이 없어 나무를 밟고 안전하게 넘어섰다.
그제서야 자일이 올라가고, 쉬운 구간을 통과해 확보점에 닿는다.
"10분 동안 뭐했어?"
"앞 팀이 안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밑에 얘기라도 해주지, 밑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더라~"
"아무 소리도 안들려서 출발했겠지 하고 그냥 확보 봤어요~ 무전기가 필요하겠더라~"
위쪽은 보니 아직 첫번째 팀이 다 오르지도 않았다.
"위 보다는 여기가 나을 거 같은데, 여기서 기다려요"
성훈이의 얘기에 자리 깔고 앉아 기다린다. 천등산에서 주로 등반이 이루어지는 곳이 북사면이다 보니 등반내내 해가 들지 않는다. 바람도 불고 한참을 기다리니 꽤 춥다.
성훈이는 이럴 때 마다, 2017년 의상봉에서 판초우의 덮고 덜덜 떨었던 거를 꺼내어
"의상봉 거지가 천등산에 나타났네" 라며 놀린다.
시간이 지체 되어 점심도 먹고
건너편 처음처럼 뜀바위 구간에선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ㅋㅋ
"저팀은 친절하게 줄을 깔아주네"
"나도 깔아줬어"
"그냥 뛰었어요~"
"뛰고 나서 바로 쌍볼튼데 확보 봐주는 상태에서 뛰었지~"
5년전 기억을 두고 옥신각신한다.
1시간 반여를 기다려 앞팀 말구가 3피치 중간을 넘어갈 때 쯤 우리도 위로 올라간다.
우리가 3피치를 하고 있을 때 다른 팀은 하강을 시작하였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천천히 출발하거나, 다른 길 하고 올껄~" 성훈이의 뒤늦은 후회
어느 등반가의 꿈은 3피치와 5피치가 11대로 어렵다고 한다.
오른쪽 끝을 따라 오르다 중간의 이빨같은 테라스에서 퀵을 하고 잠깐 쉴 수 있다. 거기서 왼쪽으로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와야 하는데 오른쪽으로 오는 것이 쉽지 않다.
성훈이는 나와라 가제트 팔을 이용하고 안전을 확보한 뒤에 능숙하게 크럭스를 넘어섰다.
내 차례, 왼쪽으로 가는거는 어렵지 않은데, 오른쪽 사선 크랙을 이용해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4피치를 마치면 테라스다.
내가 쌍볼트로 올라서니 앞팀에서 안쪽으로 와서 쉬라고 자리를 내어주신다.
앞팀이 서로 저기 슬랩으로 가봐 하는 얘기에 옆쪽을 보니 슬랩이 바짝 서있다.
성훈이가 가까이 가서 보고 오더니
"와~ 섰네 섰어. 저기를 어짜가지 와아~~~" 자기는 자신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졌는다.
"선인봉 가니깐 슬랩이 저리 서있던데 다 가더라"
슬랩 쪼랩들을 한탄.
여기서도 정체다. 좀 기다리다 신발을 벗고 성훈이는 아예 잠을 잔다.
혹시나 해서 성훈이 몸 자일을 고정해 주고, 나도 잠깐 졸았다.
춥고, 잠오고
"배는 안 고파요? 배까지 고프면 딱 거진데"
그렇게 한시간여를 기다리는데...
앞 팀은 아직 2명이 등반을 시작하지 않았고, 시계는 3시 반을 가르킨다.
일몰 시간을 확인하니 5시 반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훈이와 얘기를 한다.
앞팀에서도 걱정이 되는지 서로 얘기를 하신다.
"너가 등반하면 4시, 내가 등반하면 4시 20분 이라하면 저 뒤에 분들은 어떻게 할껀데?"
"그래서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탈출을 해야되나 생각중이에요."
"세월이가면 으로 가시는 건 어때요?"
"저 슬랩 올라갈 자신이 없어요"
"그럼 저희 퀵 이용해서 턱 넘고 중간 따라서 올라가시면 세월이가면으로 가실 수 있어요"
그때가 3시 50분. 어쨋든 결단이 필요했다.
"세월이가면으로 가볼까요?"
"그래 꿈은 미완으로 남겨두고, 다음에 니가 부 때면 다시 오자"
"알았어요. 그럼 가볼께요"
그렇게 도착한 세월이가면 5피치 시작점.
난이도는 확인안해봐서 모르겠고 볼트가 촘촘하다.
"출발~ 아 여기 손이 너무 아픈데."
"성훈아 제촉안하고 싶은데 제촉이 되네. 시간 없으니깐 두세번 해보고 안되면 인공으로 바로 넘어가라. 퀵에 레다 달아서 회수하면서 바로바로 넘어가. 다음에 와서 자유등반하고"
홀드를 찾고, 무브를 생각하면 잘 넘어갈 수 있는 난이도인거 같지만 등뒤로 산 그림자가 길게 늘어서고 있어 빠르게 넘어가기로 한다. 나도 성훈이가 두번째 볼트에 남기고간 60cm 슬링을 이용해 자유등반해볼 생각안하고 인공으로 후다다다다다다닥 넘어갔다.
지난 번에 와봤던 바위에서 사진도 찍고
그림자가 더 길어졌다.
그래도 사진 사진
대둔산을 바라보고 오른쪽 소나무 쪽으로 가면 하강링이 있다.
15m - 30m - 30m -30m 하강을 하는데 마지막 30미터는 60자 1동으로 거의 딱 맞다.
앞팀에서
"마지막에는 딱 떨어지니깐 꼭 끝 매듭하고 하강을 하세요. 저희는 그래서 70미터로 자일 다 바꿨어요" 라며 알려주신다.
우리 클럽은 등반을 가면 많은 인원에 마음이 급하여 등반도 한줄은 고정, 한줄은 확보 또는 확보, 확보 형태로 연달아 등반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앞선 팀은 6명으로 적지 않은 인원임에도 후등자 확보로 한명씩 한명씩 슬링이나 퀵을 잡는 등의 치팅없이 여유있게 자신의 등반을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물론 뒤따른 팀으로 속은 타들어갔지만 ㅋ
하강도 한명씩 양자로 하강을 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하강을 이어가고 2번의 하강을 마치고 세번재 하강지점에 도착하니
"아~ 전에 하강했던 기억난다~"
그렇게 4번의 하강을 무사히 마치고 장비를 해체한다.
주변은 꽤 어둑어둑해져 마지막까지 긴장의 끊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6시쯤 주차장에 도착하니 덩그라니 우리차만 남아 있어
수북히 쌓은 은행잎들이 등반보다 길었던 우리의 기다림을 알려주는거 같다.
이제 남은 건 각자의 집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
밤길을 달려 8시쯤 진주에 입성. 돼지국밥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며 우리의 귀엽고 앙증맞은 프로젝트 성공을 자축하였다.
정리
"나는 어떤 등반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나는 스스로를 "애쓰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많은 것을 신경쓰다 스스로의 등반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
이번 프로젝트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출발을 하였지만, 대장의 면면을 채워나가는 성훈이를 보며
나도 다른 것 신경 안 쓰고 내가 할 수 있는 등반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나는 멀티피치 등반, 시스템 등반을 잘하고 싶다.
높은 거벽의 여러 피치에 동료와 우리들의 이야기를 쌓아올리는
멋진 등반을 꿈꾼다.
각자가 다른 사람을 사는 것처럼, 모두가 같은 등반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등반을 고민하고, 찾아가자.
진클.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클럽
진클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원정을 가는 날을 기다리며
Climbing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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